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은 그렇게 싸우고 있었다! <암살>

by 인플럭스 2022. 11. 23.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변절자

영화 <암살>이 호평받은 이유 중에 우리가 잊으면 안 되지만 잊고 있었던 독립국 김원봉 이름을 실명으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과 독립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친일파 처벌을 위해 만든 특별 기구인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는 특히 변절자가 많았던 시기라고 한다. 일본이 잘 나가니깐 독립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바꿔 먹은 사람이 많았고 모던 보이에 나왔던 것처럼 일본의 문화를 즐기며 순응하고 사는 사람도 많았던 민족의 암흑기였다. 여성 독립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인상 깊은데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은 안중근+김상옥+윤봉길 3명 독립투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이다.

영화 <암살>은 독립군의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밀정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항일운동과 관련된 여러 미디어에서 독립운동가들의 고뇌와 고통, 일본인과의 일차원적 대립 등을 주로 보여주었던 것과 다르게 같은 조선인이면서 서로에게 총을 겨눈 현실을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본인보다도 악독했다는 친일파들의 행적을 고발하며 '독립할 줄 몰랐다'라는 그들의 논리를 차용해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 괘변인지를 '염석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자신만의 각기 다른 사유로 각기 다른 사유로 각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렇게 같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의 편에 붙은 친일파와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 간의 대립을 주요 이야기로 삼고 있습니다. 거거에 '하와이 피스톨' 이란 살인청부업자들도 등장해 돈을 위해 조국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지현 배우가 1인 2역을 맡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옥윤은 왜 쌍둥이일까

같은 조선말을 사용하지만 서로의 스탠스가 다른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인데 주인공 안옥윤이 쌍둥이로 등장합니다. 친일파 아버지와 독립운동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로 그녀에겐 언니 미츠코가 있습니다. 한 가정 내에 이렇게 갈린 것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대립을 축소판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추측 건데 그녀들의 아버지 '강인국' 이 일본에 나라를 팔려했다기보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 되었든 강경한 친일파였고 그의 딸 미츠코 역시 세상 물정 모른 채 편히 살아가는, 친일파 후손을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최후까지 살아남은 인물은 안옥윤이 유일합니다.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쌍둥이라는 상황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후 마츠코로 살았을 듯합니다. 극 중 친일파 염석진은 해방까지 살았었고 작전에 참여한 인물들은 작전 중에 죽음을 맞이하였기에 해방 이후까지 잘 살아남아 좋은 세상을 맞이한 것은 오히려 친일파였다는 아이러니를 보여 줍니다. 또한 염석진이 반민족 행위에 대한 재판마저 피하게 되어 더욱 씁쓸한 결말이 될 뻔했습니다.

안옥윤이 자신의 쌍둥이 언니의 죽음을 보고 난 후 그녀의 방에 들어섰을 때 터져 나온 슬픔은 일본이 한민족에게 자행한 만행의 결과입니다. 대립의 방향이 근본적인 원인을 향해야 하지만 일제강점기 중반부터 시행된 정책의 결과로 조선 인간 대립이 이어졌고 그 결과가 바로 그녀의 집안에서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결혼을 하루 앞두고 죽게 된 신부와 자식을 구하려 했던 어머니의 죽음은 진실을 알게 된 안옥윤에게 너무나도 가혹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하와이 피스톨에 의해 딸이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까지는 벌어지지 않았기에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는 잊지 않는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인 염석진의 재판 장면은 그 결과까지 매우 현실적입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고 있고 독립운동의 후손들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합니다. 결말에서 안옥윤이 살아남은 '영우'와 함께 염석진을 처단하는 장면은 이에 대한 현실 속 문제점을 영화라는 상상력을 통해서나마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동시에 염석진이 쓰러진 곳에서의 배경(흰 천이 펄럭이는 곳)을 통해 역사가 이들을 잊지 않았음을, 언제든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염석진은 해방이 될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하와이 피스톨도 안옥윤에게 이런다고 해방되지 않는데 왜 목숨을 거냐고 물어봅니다. 이에 안옥윤은 대답합니다. 끝까지 싸우고 있는 우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친일파든 독립운동가든 그 무엇도 아니든 간에 그 누구도 해방이 될 줄 몰랐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에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이 명대사는 언젠가 조선에도 봄이 찾아와 집으로 돌아갈 것이란 희망과 일본이 강제고 빼앗은 것이 모두에게 당연하듯 받아들여지지 않은다는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목숨을 걸어서까지 옳은 일을 행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댓글